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자 | 2025.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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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1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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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지방분권의 시간이다.
임정빈(한국지방자치학회 회장)
우리나라는 또 한 번 정치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대통령 탄핵 이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가 운영체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 반드시 재조명해야 할 과제가 바로 ‘지방분권의 실질화’이다.
지방분권은 단순히 행정을 개편하거나 권력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며, 오늘날과 같은 권력의 중앙 집중, 수도권의 초집중 체제와 지역 불균형,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간 경제발전과 산업화를 수도권 중심으로 추진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고, 주요 공공기관과 기업 본사, 대학, 병원, 문화 시설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반면 지방은 청년 인구의 이탈, 산업 기반의 붕괴, 출산율 하락 등 복합적 쇠퇴에 직면해 있다. 이제 지방소멸은 더 이상 지역이나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전체의 성장잠재력과 거버넌스 기반을 약화시키는 위기를 유발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점점 더 무력해지고, 중앙정부의 권한 집중은 현실과 괴리된 행정을 낳고 있으며, 지방의 주민들은 지역에서의 삶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지방분권은 더 이상 ‘지방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지방정부가 엄연히 국가의 한 축으로 기능해야 하는 것이다. 지방이 자율적이고 책임 있게 일할 수 있어야, 국가 전체가 회복력 있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지방분권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
첫째, 중앙정부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지방정부로 이양시켜야 한다. 단순한 사무 이양이 아니라, 정책 결정권과 예산 운용권을 함께 부여하는 ‘전권(全權)형 자치’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교육, 복지, 도시계획, 교통 등 제반의 생활정책 영역에서 지방의 재량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둘째, 재정분권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 현재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은 약 8대 2이며, 지방재정자립도는 OECD 평균에 비해 매우 낮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이 7대 3 수준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지방재정자립도도 향상되어야 한다. 국세의 지방세 이양, 지방소비세 비중 확대, 지방교부세의 자율성 제고가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셋째, 지방정부 간 협력과 연계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 지역발전은 개별 자치단체의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광역 연계 전략, 초광역 협력체계, 메가시티 모델을 통해 인구와 자원의 공동으로 활용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중앙-지방 간 수평적 협치 구조를 정착해야 한다. 국정의 의사결정에서 지방정부의 참여를 제도화하고, 국무회의에 상응하는 지방정부 회의체를 헌법 또는 법률로 보장, 강화해야 한다. 이 협의체는 단순한 협의기구를 넘어, 실질적인 정책 동반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지방분권의 핵심은 단지 지방정부를 강화하는 일이 아니라 '국가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국가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가 운영을 ‘중앙이 주도하고 지방이 따르는’ 것에서 ‘지방이 주도하고 중앙은 지원하는’ 패러다임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정치적 수사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적 기반과 재정 구조, 행정 관행의 개혁, 상당한 정도의 중앙정부 권한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지방분권은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지속가능성과 공동체 존속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정치가 바뀌는 지금이야말로, 해묵은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이다. 새 정부는 지방을 단순한 '대상'으로 보지 말고, 국정 운영의 동반자이자 혁신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
지방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 지방이 자립하려면, 반드시 분권이 필요하다. 이제는 말뿐인 선언이 아닌 제대로 된 실천의 시간이 필요하다.